영화는 말한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1992)_맥클레인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

영화는설왕은 2023. 7. 9. 06:04

지금처럼 영화가 쏟아지는 시절이 아니던 1990년대. 그 당시에는 괜찮은 영화가 나오면 어떻게 해서든 그 영화를 찾아서 보곤 했다. 시간 때우기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본 좋은 것을 나도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극장을 찾거나 아니면 비디오 가게에서 테이프를 빌렸다. 인기 있는 영화는 대여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던 시절에 누구나 다 한 번쯤은 보았을 영화가 "흐르는 강물처럼"이다. 무엇보다도 영화 포스터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강의 한 바위 위에서 낚싯줄을 던지는 한 사내, 그리고 그의 머리 위로 춤을 추듯 돌아가고 있는 낚싯줄.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은 "흐르는 강물처럼"이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서 화면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에게 이것보다 더 비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에 있을 만한 장면이 또 있을까? 그래서 "흐르는 강물처럼"은 꽤나 인기가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안 봤구나 

1990년대에 꽤나 인기가 있었던 이 영화를 나는 안 봤다. 이 영화를 안 봤으면서 계속 봤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찜찜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영화로 말이다. 심지어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역시나 찜찜한 나의 기억이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억을 한참을 헤쳐서 살펴본 이후에야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영화와 헷갈렸던 영화는 브래드 피트가 나왔던 "가을의 전설"이었다. 나는 "가을의 전설"과 "흐르는 강물처럼"을 같은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안 봤으면서도 좋지 않은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었던 "흐르는 강물처럼"을 본 이유는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제는 이 영화를 품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때의 내가 왜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고 싶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포스터가 한몫을 했다. 미국에서 낚시를 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고 싶기도 했다. 나의 기억처럼 이 영화는 다소 거북스러운 결말을 보여 주었고 나의 기대처럼 나는 이 영화를 품을 수 있었다. 

 

 

추천 이유 1, 평범한 이야기라서

첫째,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다. 자극적인 이야기가 넘치는 이 세상에 이런 평범한 이야기가 오히려 귀중한 세상이 되었다. 마법사가 나오고 슈퍼 악당이 등장하고 용이 날아다니고 외계인이 출몰하고 좀비가 세상을 휩쓸어 버리는 정도가 되어야 사람들이 눈길 한번 주는 정도 되는 이 세상에 평범한 이야기는 정말 귀한 이야기다. 흥행을 하기 어려운 이런 담백한 이야기는 요새 같은 세상에서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1992년이었으니까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평범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대체로 잔잔한 삶의 이야기다. 몬타나 주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목사이고 두 아들이 있고 엄마도 그저 평범하게 아이들을 사랑하고 남편을 잘 내조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 그러나 그 누구의 삶도 평탄할 수는 없다. 이 영화에 나오는 맥클레인 가족의 삶도 그렇다. 사실 그것이 평범이다. 평탄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탄하지 않은 삶, 그것이 평범한 삶이다. 멀리서 보면 잔잔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소용돌이를 만들며 급하게 흘러가는 강물 같은 영화랄까?  평범해 보이는 한 가족의 일생, 하지만 그 안에는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수렁도 있다. 어떻게 그들은 그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그냥 보통 사람인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추천 이유 2, 스토리가 탄탄해서

둘째, 이 영화는 스토리가 탄탄하다. 시카고 대학 교수였던 노먼 맥클레인(1902-1990)이 자신을 실화를 토대로 1976년에 출판한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일단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는 데서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이  70이 넘은 전 대학 교수가 무슨 생각으로 소설을 썼을까? 당연히 먹고살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니다. 죽기 전에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서 또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싶어서 쓴 글일 것이다. 영화의 초반에 나오는 내레이션처럼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서 글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한 사람의 일생을 잘 정리한 글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삶의 지혜를 전하고 싶어서 쓴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그런지 영화도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을 가지고 만들지 않았나 싶다. 영화에서 무슨 특별한 교훈이냐,라고 따져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공감했다. 이 글은 여러 출판사로부터 거절받고 결국은 노먼 맥클레인이 몸담았던 시카고 대학의 출판부에서 출간했다. 하지만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추천 이유 3, 맥클레인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

세 번째, 맥클레인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가 좋다. 이 영화를 보고 기분이 찜찜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삶의 경륜이 쌓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특별히 맥클레인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새겨 들어야 할 메시지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도 그의 메시지를 실천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영화에서 목사가 나오면 보통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의 선입견이 그런 것 같다. 나도 그렇다. 목사가 영화가 나오면 저 사람은 뭔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정도면 양호하다. 영화에서 나오는 목사는 보통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많다. 아니면 사기꾼인 경우도 꽤 있다. 겉으로는 선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온갖 나쁜 짓을 다 저지르는 사람, 겉으로는 점잖은 것 같지만 남들이 안 볼 때는 거칠고 천박한 사람으로 나오기도 한다. 맥클레인 목사도 답답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 보았다. 왜 이렇게 목사들은 안 좋게 보이는 것일까?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이유를 찾았다. 목사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율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그런 규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보통 신앙이 있는 사람, 그중에서도 목사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율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규율을 고집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규율을 지키라고 강요한다. 그것이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이 영화를 통해 맥클레인 목사의 신앙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목사는 신앙이 거의 완숙한 경지에 오른 사람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목사의 신앙도 시간이 갈수록 성숙할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맥클레인 목사가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신앙이 점점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설교는 마음에 새겨둘 만하다. 

 

영화 속 명대사

"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우리는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이해 없이도.

 

이것과 비슷한 대사가 있다.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에서 나온 대사이다. 

 

난 널 이해하지 않아. 그냥 받아들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