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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 블랙의 사랑(1998)_왜 브래드 피트인가?

영화는설왕은 2023. 5. 15. 07:12

https://youtu.be/j__uep2JTc0

1998년에 개봉한 "조 블랙의 사랑"은 브래드 피트가 가장 잘 생기게 나온 영화일 것이다. 안 그래도 잘 생긴 사람인데 말끔하게 차려입고 격식 있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가끔 귀여운 짓도 하니 보는 사람을 홀리는 수준이다. 나는 잘 생긴 배우가 자신이 잘 생겼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행동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감독이 시킨 것인가, 아니면 시나리오에 그렇게 나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평소 행동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그런 연기가 좀 재수 없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보다도 오히려 왜 저승사자를 저렇게 잘 생긴 사람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품으며 영화를 보았다. 참고로 영화는 3시간이 넘는다. 아바타와 같이 끝없는 액션과 볼거리로 가득한 영화도 아닌데 3시간을 봐야 하다니... 하지만 브래드 피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세 시간 정도는 아주 금방 지나갈 수도 있다. 아래에 나온 사람이 바로 저승사자 조 블랙이다.

 

 

영화의 신선함은 저승사자에게 있다. 저승사자라 하면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귀신과 같은 존재이므로 몸이 없거나 아니면 인간과는 전혀 다름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에서도 저승사자는 몸이 없다. 일단 목소리로 등장한다. 빌 패리쉬(앤서니 홉킨스)가 침대에서 환청을 듣는다. 환청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제로 저승사자가 부르는 소리니까. 처음 들린 말은 Yes이다. 목소리만 가지고 있던 이 저승사자는 사람의 몸을 가지고 이승 투어를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 젊은이를 죽여서 그 몸을 빌린다. 막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염라대왕한테 걸리면 혼나지 않을까? 그래서 고른 젊은이가 바로 아래의 젊은이. 뭐, 똑같이 브래드 피트이다. 

 

그 당시에 제일 잘 생긴 배우로 이름을 떨치던 브래트 피트가 나와서 영화의 내용을 볼 것 없이 그의 얼굴만 보다가 이야기를 놓칠 수도 있다. 나는 반감을 가지고 보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제목에서 말해 주고 있다. 조 블랙을 만나라. Meet Joe Black. 그런데 우리나라 영화 제목은 이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지는 못하다. "조 블랙의 사랑"은 아니다. 저승사자가 이승 투어를 하다가 사랑에 빠지기는 하지만 그게 전체 주제는 될 수 없다. 너무 브래트 피트에게 빠져 버린 제목이다. 조 블랙의 사랑은 매우 서툰 사랑이고 어떻게 보면 첫사랑이다.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윌에게 배워야 할 정도이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죽음에 대한 것이다. 저승사자를 만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저승사자를 만나면 삶에 대한 이해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한다면 삶의 자세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윌 패리쉬이다. 그는 죽음 고지를 듣는다. 사람이 갑자기 죽을 수도 있지만 윌에게는 일종의 기회가 주어졌다. 갑작스럽게 죽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은 저승 사자가 그 시간을 함께 할 것이라는 사실. 저승사자는 이승을 체험해 보고 싶었고 그래서 윌 곁에서 삶의 경험을 느껴 보기로 한다. 그 조건으로 윌에게 며칠 간의 시간을 준다. 어떻게 보면 그냥 윌을 이용하는 것이다.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서 바로 데려가야 할 사람은 놔둔 채 그 옆에서 한 번 이승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냥 혼자 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한 사람을 곁에 둔 것은... 아무래도 초행길이라 좀 두려워서 그랬던 것일까? 그래서 그 와중에 땅콩잼의 맛에 반하기도 하고 첫 키스의 달콤함에 전기 충격 같은 경험을 하기도 한다. 

 

 

대체로 영화에서 나오는 저승사자는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당대 최고의 섹시 배우 브래드 피트라니... 꼭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드라마에도 유명한 저승사자가 한 명 있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죽음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야 한번 잘 만나 봐"라는 것이 아닐까? 죽음은 슬픈 일이다. 내가 죽는 일은 슬픈 일이 아니다. 죽음을 만나면 생기는 이득이 있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조 블랙의 사랑"에서 윌은 자신의 파티를 열심히 준비하는 첫째 딸의 노력을 귀찮아한다. 자신은 파티를 싫어한고 계속 투덜댄다. 그러나 첫째 딸은 아빠의 65세 생일을 정말 성대하게 치르고 싶다. 파티의 규모는 정말 거대해서 생일잔치를 진행하는 것이 첫째 딸의 일이 될 정도이고 이것은 이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주요한 행사이다. 그런데 윌은 첫째 딸보다는 둘째 딸을 더 좋아한다. 첫째 딸도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빠가 둘째 딸을 편애하듯이 첫째 딸은 자신도 아빠를 편애한다고 말한다. (성경의 탕자 이야기의 첫째와는 다르네... ㅎㅎ)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윌은 계속 불만이다. 나는 파티를 싫어한다니까...라고, 계속 말한다. 그래서 케이크를 골라달라는 데도 또 욕을 한다. 첫째 딸이 섭섭해서 눈물을 흘리자 윌은 회개한다. 그리고 케이크를 골라 준다. 쇼를 하는데 묘하게 감동을 준다. 쇼라는 것을 첫째 딸도 아는데 말이다.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 또는 취향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할 수도 있다. 그게 그 자신만의 진실이다. 하지만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할까?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맛없는 것을 맛있다고 말 못해, 라고 말한다고 이 사람은 뭘까? 진리 수호자? 정직한 사람? 그런 것 지키지 말자. 그것보다 더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사랑이다. 이런 윌의 태도 전환은 조 블랙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조 블랙을 만나라. 브래드 피트를 좋아한다면 꼭 만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