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말한다

[영화] 오만과 편견 (2005)_그림 같은 풍경과 춤 속 대화

영화는설왕은 2023. 2. 22. 16:25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오만과 편견"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리지'와 '다아시'를 누가 맡느냐였을 것이다. 나는 베넷 가의 첫째 딸인 제인 베넷이 누구일지도 궁금했다. 베넷 씨의 다섯 명의 딸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미녀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둘째 엘리자베스 베넷을 맡은 사람은 키이라 나이틀리이다. 우리에게는 "비긴 어게인"으로 잘 알려진 배우이고 스타워즈 시리즈에도 나오는 유명 배우이다. 2023년 기준으로는 워낙 유명한 사람이지만 2005년에는 유명세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1985년 생으로 2005년이면 실제 소설에 나온 리지의 나이와 같은 20살이었다. 소설에서는 제인이 리지보다 더 예쁘다고 했는데, 영화에서는 아무래도 리지가 훨씬 더 눈에 띈다. 제인은 좀 답답한 성격이고 리지는 아주 쾌활하고 총명한 사람으로 나오는데 영화에서 리지 역을 소화한 나이틀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총기라기보다는 장난기가 있는 눈빛과 표정인데 리지와 잘 어울렸다.

 

 

영화는 소설보다는 훨씬 더 압축적인 이야기이다. 따라서 리지나 다아시가 가진 복합적인 매력을 펼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남녀 간에 사랑이 싹 뜨려면 결정적인 순간이나 밀고 당기는 과정, 위기를 극복하고 결국 사랑에 성공하는 사건들이 필요한데 러닝 타임이 부족했던 것 같다. 뜬금없이 다아시가 리지에게 청혼하고 리지가 마음을 여는 과정도 갑작스러운 면이 있다. 왜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지?, 하는 의문이 든다. 하긴 그 당시의 연애라고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하는 연애와는 많이 다른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 같다. 현대에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예전에는 개인의 감정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뜬금없이 갑자기 사랑하고 청혼하고 거절하는 과정이 여러 번 나오니까 좀 당혹스러웠다. 소설에서는 구체적인 설명이나 주변 상황이 묘사되는데 영화는 두 시간 정도 안에 모든 것을 보여주려니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이 영화의 단점이다. 그냥 소설의 주요 장면을 화면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리즈가 청혼받고 거절하는 장면

장면 장면이 참 아름답다. 허술한 영화의 스토리보다는 영화 속 풍경을 즐기는 것이 영화를 더 잘 보는 방법일 것이다. 생각해 보니 영국 영화를 볼 때 풍경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다아시나 빙리 모두 잘 사는 집안이니 집이 으리으리하고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다. 유럽의 잘 보존된 성 안을 둘러보는 느낌이랄까. 리즈가 다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화가 나서 뛰쳐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비가 억수같이 쏟아붓는다. 그 장면도 참 아름다웠다. 우리가 생각하는 주거지와는 아주 다르다. 성과 같이 커다란 집이 하나 있고 그 주위를 숲이 둘러싸고 있다. 비가 올 때 보이는 풍경도 눈에 거칠 것이 없이 매우 운치 있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장면은 춤을 추며 대화하는 장면이다. 파티에 모여서 춤을 추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지금은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파티를 열면 함께 격식 있는 춤을 추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웠던 왈츠 같은 춤들을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함께 추는데 18세기 중상류층의 사람들은 저런 사교 모임을 즐겼다는 사실이 독특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파티에서 춤을 춘다고 하더라도 자유롭게 춤을 추지 어떤 격식이 있는 춤을 함께 추지는 않을 것 같다. 옛날 영국에서 그런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일단 신기했다. 그리고 영화에서 그런 모습을 재현해서 다시 보여주느라고 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춤을 추면서 다아시와 리즈가 계속 대화를 나누는데, 그런 장면을 만들어내느라고 영화의 전체 짜임새가 다소 허술해지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정리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거나,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어야 한다. 하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 당연히 영화가 보고 싶을 것이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허술한 짜임새를 보충하기 위해서 소설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