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말한다

[영화] 신과함께: 죄와 벌(2017)_우리에게 필요한 지옥은?

영화는설왕은 2023. 4. 6. 19:44

보고 싶지 않았는데...

"신과함께"를 보고 싶지 않았다. 스토리가 너무 뻔할 것 같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도배된 영화는 현실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어떤 사람이 죽어서 지옥을 체험한 후 회개한 이야기일 것 같았고 우리나라 영화의 컴퓨터 그래픽 실력을 아직 믿을 수 없었다.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으로 나온 "천국보다 아름다운"(1998)에서 사후 세계에 대한 묘사에 실망한 적이 있었서 그런지 어설픈 지옥 묘사가 보고 싶지 않았다. 그 후로 벌써 20년이 지나긴 했지만 천국이나 지옥을 그린다는 것이 결국 우리가 본 적이 없는 세상을 그리는 것인데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그 영화를 통해 각인하게 되었던 것 같다. 너무 이질적이어도 안 되고 이 세상과 너무 비슷해도 실망하게 될 텐데 그렇다면 나도 정확히 파악이 안 되는 나의 기대치를 어떻게 맞출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신과함께:죄와 벌"은 관객수가 천만을 훌쩍 넘었다. 그래서 나는 그 관객수 덕분에 뭔가 있나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 영화를 봐야 할 때가 있다. 가족끼리 모여서 무언가를 같이 하고 싶거나 데이트를 하고 싶은데 편하게 앉아서 같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다면 영화보다 더 좋은 것을 찾기가 어렵다. 나는 가족 시간을 보낼 때 함께 볼 영화를 찾다가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래도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영화를 두 번 봤고 두 번 다 울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효도해라'일 수도 있겠고 내가 느끼기에는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였다. 때로는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당신의 엄마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당신을 사랑한다"였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지옥이라는 장치가 주는 긍정 효과

아무도 지옥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지옥이 있다면 좀 컴컴한 곳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죽으면 땅에 묻히게 되거나 또는 흙으로 돌아가게 되니까 지옥은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곳이라고 추측하는 것 같다. 그 외에는 정말 상상 불가능한 영역이다. 영화에서도 제작자나 감독 모두 지옥을 묘사하는 데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지옥을 묘사하기 위해서 몽골의 고비 사막이나 볼리비아의 소금 사막과 같은 곳을 다녀오고 나서 오히려 현실감 있는 지옥을 그려서 이질감을 줄였다고 한다. 지옥은 관련된 믿을 만한 서적도 없고 경험한 사람도 없다. 경험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설사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의 말이 진실인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지옥은 실제로 있을 수도 있지만 실존 여부를 떠나서 우리가 하는 지옥 이야기는 모두 일종의 장치로 여기면 된다. 지옥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더 좋은 세상 또는 천국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이다. 나쁜 짓을 하면 죽어서 지옥 간다고 말을 하고 그 말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좀 더 조심해서 살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지옥은 이 세상을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장치 역할을 한다. 그런 면에서 지옥은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김자홍이 처음으로 가서 재판을 받게 되는 살인지옥의 경우를 보자. 살인은 이승에서도 벌을 받는 죄이다. 그렇다면 살인을 저질렀을 때 이승에서도 벌을 받고 저승에서도 벌을 받을까? 그렇다면 저승은 이승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저승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영화에서 살인지옥은 직간접적으로 살인에 연루되어 있는 경우에 모두 처벌을 받게 된다. 즉 세상에서는 직접적인 살인의 경우에만 처벌을 받게 되어 있지만 지옥에서는 간접 살인도 처벌을 받게 된다. 그래서 해원맥(주지훈)이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인터넷 댓글 같은 거 함부로 달면 안 돼 기록에 다 남아."

 

이러면 지옥이 의미가 있다. 인터넷 댓글이 깨끗해지는 세상,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아닌가? 이 세상에서 악성 인터넷 댓글을 몽땅 처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지옥에서는 그런 것까지 모두 포함해서 벌을 받게 된다니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장치임에 분명하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지옥, 나태지옥

김자홍은 나태지옥에서 재판을 받는다. 나태지옥은 김자홍이 두 번째로 통과하는 지옥.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으므로 이 지옥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초강대왕이 "무엇이 널 그렇게 열심히 살게 했냐?"고 묻자 김자홍은 "돈 때문이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극대노한 초강대왕은 그를 나태지옥에 처넣으라고 명령한다. 지옥은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는 전제를 가지고 다시 한번 판단해 보면 이 지옥은 문제가 있다. 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근면 성실보다는 나태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일을 하고 공부를 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면 이 세상은 점점 더 지옥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1492년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근대라는 시대가 시작되었고 그때부터 달리기는 시작되었다. 먼저 가서 깃발을 꽂는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 같이 무한경쟁의 달리기를 시작했다. 지금의 자본주의 시대로 마찬가지이다. 마치 오징어게임과 같이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므로 1등을 차지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달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있다. 김자홍이 돈 때문에 일을 했다고 하는 것도 그가 가진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지금은 돈이 돈을 버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나태지옥은 존재하면 안 된다. 세상에 대한민국 국민처럼 빨리빨리 열심히 살아가는 민족이 또 있을까? 내가 볼 때 나태지옥은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게 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 지옥이다. 나태지옥은 사라져라! 

 

 

이상한 지옥, 천륜지옥

'신과함께:죄와 벌'을 처음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다시 보니 이상한 지옥이 하나 있다. 바로 천륜지옥이다. 천륜을 저버리는 자들은 천고사막에 산 채로 매장당하는 벌을 받게 된다. 김자홍은 어머니가 자고 있을 때 베개를 가지고 어머니를 살해하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에 이 재판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천륜지옥이 가장 중요한 지옥이다. 이 지옥을 관장하는 신은 바로 지옥의 왕인 염라대왕. 그것만 봐도 '신과함께: 죄와 벌'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지옥은 바로 천륜지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천륜 즉 부모 자신 간에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해서는 법으로 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천륜을 저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을 때도 있다. 살인자라고 하더라도 모르는 사람을 죽인 사람과 자기 부모를 죽인 사람은 그 처벌이 같을 수가 없다. 그것은 상식과도 같다. 그런데 천륜지옥이라니... 쓸데없는 지옥 아닌가? 그래서 의심하게 되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천륜지옥이 필요한 사회인가? 일베라는 사이트가 젊은 사람들에게 꽤 인기가 있다는 사실이 나는 놀라웠는데, 그 사이트는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진 단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이트이다. 옳고 그름은 없고 재미있고 재미없고만 있다. 기준은 재미와 새로움일 뿐, 옳고 그름은 존재하는 않는 곳이다. 중고등학생들 중 패드립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우리 아이들이 와서 말할 때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가 그런 것도 같다. 천륜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도리 이상의 도리가 부모 자식 간에 필요한가라고 물어본다면 마땅한 이유를 대기가 곤란한다. 그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상하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지옥이다. 천륜지옥 하나만 있으면 더 이상 천륜을 지켜야 한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당연한 거 아니야. 이렇게... 지금 이 시대가 천륜지옥이 필요한 시대라면 좋은 시대가 아닌 것 같다. 이상한 시대이다. 

 

 

지옥이 주는 부정 효과: 두려움

지옥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존재한다면 긍정적인 효과는 위에서 언급한 것이 한 가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옥이 주는 부정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지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올바로 살아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줄리엣이 로미오를 사랑하는데 그 이유가 로미오가 가진 돈 때문이라면 그것은 줄리엣의 사랑에 대한 모독이다. 인간이 미워하는 사람도 용서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이유가 지옥에 가서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인간의 용서와 사랑에 대한 모독이다. 단지 벌을 받기 싫어서 또는 맞기 싫어서 선한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그런 존재가 존엄한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단지 고통을 싫어하는 동물 이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지옥에 가기 싫어서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지옥에 가기 싫어서 부모를 공경하고 지옥에 가기 싫어서 정의롭게 살아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사람이 선을 행하는 이유는 벌을 면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상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어야 한다. 단지 그것이 선한 것이기 때문이고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있는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옥이 존재하면 안 된다. 결국 모든 지옥은 사라져야 한다. 천륜지옥이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수치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자신의 고귀함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동물처럼 날뛴다면 잠시 동안 몇 개의 지옥은 있는 것처럼 꾸며 놓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마치 가짜 CCTV를 달아놓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