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말한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 (2002)_사람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영화는설왕은 2023. 3. 10. 11:35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치러질 때 상영한 영화이다. 오래전에 보았을 때도 재미있게 보았는데 2023년에 다시 볼 때도 흥미롭게 보았다. 일단 휴 그랜트라는 인물이 주는 매력이 있다. 어눌하고 어리숙한 것 같으면서도 날카로운 구석이 있고 미운 짓을 하는데도 묘하게 밉지가 않은 캐릭터이다. 꼴 보기 싫은 캐릭터가 있는 반면에 계속 말을 걸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 휴 그랜트는 대화하고 싶은 캐릭터이다. <어바웃 어 보이>의 주인공 윌 프리먼은 휴 그랜트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인물이다. 그리고 마커스 역을 한 니콜라스 홀트 역시 아주 좋은 연기를 보여 준다. 이 영화는 다른 것보다 두 사람의 매력이 가장 중요한 영화인데 휴 그랜트와 니콜라스 홀트가 그 역할을 훌륭하게 잘 해냈다. 

 

줄거리

윌 프리먼은 혼자 사는 것을 좋아하는 독신 남성이다. 그렇다고 독신주의자인 것 같지는 않고 진지한 관계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다. 관계가 진지해질 것 같으면 스스로 알아서 도망가는 사람이다. 가벼운 관계를 지향한다고 할까? 그래서 윌은 가벼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여러 여자들을 사귀면서 싱글맘을 사귀면 어느 정도 사귀다가 편하게 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싱글맘을 만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윌은 한 부모 모임에 나간다. 물론 결혼도 하지 않는 윌은 아이가 없지만 마치 아이가 있는 것처럼 위장을 한다. 수지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만남을 이어 가는데 그 와중에 마커스라는 아이를 알게 된다. 마커스는 싱글맘의 열두 살짜리 아들이다. 마커스의 엄마 피오나는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 시도까지 한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독특한 행동으로 인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던 마커스는 자신의 문제에 집중할 겨를이 없다. 우울증에 걸린 엄마가 위험하기 때문에. 마커스는 혼자 엄마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윌을 끌어들이기도 작정한다. 윌과 엄마를 이어 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래서 윌을 관찰하던 마커스는 윌에게 아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엄마와 윌을 이어 주기로 했지만 여의치 않고 집에 있는 것이 괴로운 마커스는 날마다 윌에게 놀러 와서 같이 TV를 본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친해지는데....

 

질문 1. 소년은 누구인가?

이 영화의 제목은 <어바웃 어 보이>이다. '한 소년에 대하여'라는 제목인데 영화를 보면 소년 주인공이 나오기는 한다. 니콜라스 홀트가 맡은 마커스라는 아이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마커스는 소년이지만 소년 같지 않고, 거기에 진짜 아이 같은 사람은 바로 윌이다. 어른이고 적당한 수입이 있기 때문에 아무 걱정 없이 혼자 살아가지만 윌은 마커스보다 더 아이 같다. 수시로 거짓말을 하고 책임감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다. 관계가 조금이라도 진지해질 것 같으면 도망가고 직업을 가질 생각도 못한다. 맨날 집에서 비디오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자신이 원하는 취미 활동과 여성과 가벼운 데이트만을 즐긴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격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영어로는 No man is an island인데 이 격언에 대해서 윌은 정면으로 부정한다. 모든 사람은 섬이라고 주장한다. 옛날에는 혼자 놀기 너무 힘들었지만 이제는 혼자 놀 것이 많기 때문에 충분히 섬 생활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몰디브 섬이라고 여긴다. 윌은 혼자 사는 삶을 추구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윌이 더 아이 같고 소년이 더 어른 같다. 아마도 그 이유는 윌은 문제가 생기면 계속 도망가려고 하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빠져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마커스는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엄마의 우울증이라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자신이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자 윌을 끌어들이려고 작전을 짠다. 그리고 나중에는 엄마를 위해서 학교 공연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한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 것이라고 여러 사람이 그만두라고 조언하지만 듣지 않는다. 엄마를 기쁘게 해야 엄마를 살릴 수 있다고 믿었던 마커스는 공연을 감행한다. <어바웃 어 보이>에서 소년은 윌이 아닐까? 윌은 어른이 되지 못하는 어른이었다.  

 

 

질문 2. 사람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이 영화는 성장 드라마이다. 소년 마커스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도 윌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윌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윌을 성장시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밥이나 시간이 아니라 관계라는 사실이다. 사람은 잘 먹고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잘 먹고 시간이 지나도 윌은 어른이 되지 못했다. 이 영화는 섬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어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을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관계이다. 특별히 어려운 관계가 사람을 성장시킨다. 어려운 관계과 생겼을 때 그 관계를 끊어버리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사람이 성장하지는 않는다. 마커스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우울증에 걸린 엄마 덕분이었다. 물론 우울증에 걸린 엄마를 둔 아이가 다 마커스처럼 성장하지는 않는다. 어떤 아이는 성장은커녕 더 삐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마커스에게는 힘이 있었다.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고 그 관계를 끊어버리지 않고 붙들고 있을 힘이 있었다. 그 노력으로 인해서 마커스는 아이였지만 윌보다도 더 어른이 될 수 있었다. 어려운 관계가 사람을 성장시킨다. 거기에서 도망가면 성장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고 그 관계를 유지한다면 성장할 수 있다. 윌이 성장할 수 없었던 이유는 직업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직장에서 맺는 관계도 매우 힘든 관계일 때가 많다. 그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람은 어른이 된다. 

 

역사상 유명한 3대 악처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 모차르트의 아내, 그리고 마지막으로 톨스토이의 아내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 정말 어마무시하게 훌륭한 사람들이다. 소크라테스, 모차르트, 톨스토이... 이들이 훌륭했기 때문에 악처의 바가지를 잘 견뎠을까 아니면 악처 덕분에 이들이 훌륭하게 되었을까? 나는 후자를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들이 악처를 잘 견딘 것은 일단 칭찬한다. 하지만 악처 덕분에 소크라테스, 모차르트, 톨스토이는 누구보다도 더 성장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훌륭한 사람 되겠다고 악처나 나쁜 남자를 찾는 사람은 없겠지? ^^

 

 

질문 3. 왜 윌은 노래를 더 했을까?

영화의 거의 종반부에 이르러서 마커스를 엄마를 위한 공연을 한다. 탬버린을 치면서 Killing me softly를 부른다. 공연 바로 직전에 반주를 해 주기로 했던 친구는 물러선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 것 같아서... 하지만 마커스는 혼자 공연을 감행한다. 보다 못한 윌이 기타를 들고 나와서 도와준다. 덕분에 썰렁한 분위기를 상쇄하고 나름 괜찮은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공연을 다 마친 것 같았는데 갑자기 윌이 노래를 한 번 더 부른다. 그것도 혼자서. 옆에 서 있던 마커스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결국 윌은 날아오는 물건에 머리를 얻어맞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노래를 부른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자신이 더 못난 모습을 보여 주어서 마커스를 돋보이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 의미를 아시는 분은 저에게 좀 알려 주시기를... ^^

 

 

 

마지막으로 

윌은 결국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섬으로 보이는 땅도 사실은 바다 아래쪽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참고로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말은 17세기에 살았던 존 던이라는 성공회 사제가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