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말한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2000)_힘을 빼라

영화는설왕은 2023. 9. 8. 23:13

 

20세기 말에 톰 행크스는 대단했다. 물론 21세기에도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했지만 나는 1990년대에 그가 출연한 영화는 꼭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로맨스 영화에 자주 출연했고 연기도 자연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리 잘 생기지 않는 덕분에 그의 외모보다는 그가 했던 말과 행동이 더 생각이 나는 것 같다. 톰 행크스가 젊을 때 나온 '빅'이라는 영화도 좋았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다. '유브갓 메일'도 여러 번 보았다. 맥 라이언과 톰 행크스가 호흡을 맞춘 영화라서 더 좋았다. 가장 히트했던 영화는 '포레스트 검프'를 들 수 있겠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있고 그 외에도 찾아보면 많은 것이다. '캐스트 어웨이'도 재밌게 본 영화 중 하나다. 

 

 

캐스트 어웨이는 톰 행크스의 원맨쇼에 가까운 영화다. 페덱스의 직원인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무지하게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택배 회사 직원은 스피드가 생명 아닌가. 세상에 뭐가 그렇게 빨리 배송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물건들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여튼 택배 회사는 빠르게 배송된다는 것이 자기 회사가 내세우는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다. 누가 천천히 배송되는 회사를 이용하겠는가. 그래서 척도 시간에 떠밀려 사는 사람이었다. 여자 친구와 제대로 데이트할 시간도 부족해서 차 안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기도 한다. 여자 친구인 켈리 프리어스는 척에 할아버지의 유품인 시계에 자신의 사진을 넣어서 선물한다. 그 정도로 척은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페덱스 전용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던 척은 폭풍우를 만났다. 비행기를 바다로 떨어졌고 척은 다행히 구명 보트를 타고 빠져 나와 무인도에 표류한다. 무인도는 정말 아무도 없는 곳. 그래서 이 영화는 원맨쇼가 될 수밖에 없다. 

 

 

무인도에서 생존하는 척의 모습을 보는 것은 솔솔하다. 요새 많은 사람이 캠핑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무인도 생활은 거친 캠핑 생활 같은 느낌이다. 그런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다. 코코넛을 깨서 그 안에 있는 즙을 먹는 장면이나 불을 피우는 장면, 그리고 꼬챙이를 만들어서 물고기를 잡는 장면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보았던 장면이다. 물론 그런 예능 프로그램 이전에 캐스트 어웨이가 있었다. 무인도의 여러 장면들은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먹고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불이 필요하고 잠잘 곳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집 같은 것을 지어야 하니까. HELP라고 크게 써서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자 하는 것도 예상 가능했다. 물론 영화는 척의 무인도 생활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탈출을 하든가 아니면 기적적으로 구출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보았다. 척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도 하지만 켈리를 만날 생각으로 어떻게든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애를 쓴다. 

 

 

척은 4년 만에 탈출에 성공한다. 그것도 자신이 뗏목을 만들고 돛을 달고 바람의 방향을 이용해서 파도를 넘어서 탈출에 성공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기는 하다. 자연에서 나오는 것만을 이용해서 뗏목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지 그게 일단 문제일 것 같고 4년 만에 바람의 패턴을 확실하게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바람의 방향을 기록하고 날짜를 정확하게 기록해야 하는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또한 파도를 넘어서 섬을 빠져나온다고 해도 물도 없고 식량도 없는데 무슨 생각으로 바다로 나갈 생각을 했던 걸까? 일종의 자살 행위인데... 어쨌든 그 모든 난관을 뚫고 척은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만약에 보통의 헐리우드 영화라면 켈리와 뜨거운 재회를 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났을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켈리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고 딸도 하나 낳았다. 

 

 

척과 켈리는 서로 사랑했고 다시 만난 그때에도 서로 사랑했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켈리는 자신과 결혼한 남편 그리고 딸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지만 그냥 헤어질 수밖에 없는 사이. 이 지점에서 영화는 관객들을 생각에 빠지게 한다. 척의 무인도 생활을 버티게 해준 켈리는 일종의 신기루에 불과했다.척은 켈리를 만날 생각으로 악착같이 살아남고 희박한 확률에 목숨을 걸어서 그 섬에서 탈출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켈리는 척이 죽었을 것이라고 믿을 가능성이 높았다. 켈리가 매력적인 사람일수록 그녀가 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은 더 적었다. 그래도 뭐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그냥 켈리 그 자체를 생각하면서 척은 탈출한다. 그러나 현실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겠는가? 다시금 또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이런 것이다. 이 영화는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뭐가 좋아, 사랑이 중요하지라는 메시지를 줄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랑 때문에 꾸역꾸역 살아남고 목숨을 걸었는데 거기엔 이미 사랑이 사랑지고 없었다. 야.. 그렇다면 인생은 뭘까? 사람은 왜 사는 걸까? 사랑 때문에 살았는데 사랑이 사라져버리면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뭐지?, 라는 질문을 던져 주었다.

 

 

영화에서 척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척이 자살을 하려고 했던 순간이었다. 도저히 무인도를 빠져 나갈 수 없을 것 같고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을 때 척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결정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인도의 작은 산에 올라가 나무에 목을 달아 죽으려고 결심한다. 그러나 제대로 죽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 일단 무거운 물체를 밧줄에 달아 던져 본다. 그런데 나무가 부러져 버린다. 그 순간 척은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I had power over nothing.) 그러면서 살아남아야겠다는 느낌이 왔다고 말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논리는 그는 섬을 빠져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뜯겨진 간이 화장실 문이 파도에 떠밀려 오면서 그 논리는 깨진다. 그러면서 척은 말한다. 우리는 숨을 계속 쉬어야 한다. 왜냐하면 내일 또 태양이 떠오를 것이고 저 파도를 넘어서 뭐가 밀려올지 모르니 말이다.  

 

힘을 좀 빼면 사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 척이 가장 기뻐했던 순간은 '불'을 피우는 데 성공했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