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말한다

[영화] 업 (2009)_삶이 너무 어렵고 지극히 평범하다고 느낀다면

영화는설왕은 2023. 10. 15. 04:53

 
UP은  2009년 픽사가 열 번째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이토록 짧은 제목의 영화가 또 있을까? 영어로 두 글자, 한국말로 한 글자니까 이것보다 더 짧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말로는 더 짧은 것은 불가능이고 영어는 한 글자 제목도 있을 수 있으니까 제일 짧은 제목은 아닐 것도 같다. 그래도 내가 아는 영화 중 가장 짧은 제목의 영화다.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든다. UP이니까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상승하는 기분이고 영화 포스터를 보면 풍선을 타고 날고 있는 집을 볼 수 있어서 자유로운 느낌도 든다. 
 

 
영화의 초반 5분 정도는 아마 안 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다. 칼과 엘리의 결혼 생활을 짧게 짧게 보여주면서 시간이 경과하는 것과 중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Married Life라는 음악과 함께. 정말 아무 말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두 부부의 이야기를 보여 준다. 엘리는 동물원에서 사육사로 일하는 것 같고 칼은 같은 동물원에서 아이들에게 풍선을 파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의 삶에서 무슨 특별한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냥 보통 사람의 삶을 보여 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가 아끼고 사랑하는 부부다. 주말이면 같이 작은 언덕에 올라가 함께 누워서 구름을 보는 것이 취미다. 구름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두 사람 모두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렸을 때 동경하던 모험가가 있었다. 그 모험가가 남미에 있는 파라다이스 폭포에 신비한 동물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팬이었던 두 사람은 돈을 모아서 모험을 떠나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번번이 돈을 써야 할 일이 생겨서 여행을 가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 버렸다. 이제는 정말 여행을 가려고 비행기 티켓까지 구입했지만 엘리는 병으로 먼저 세상을 등지게 되었고, 칼만 혼자 남는다. 정말 아무 말도 없이 음악과 장면들만 지나가는데 감동을 주는 5분이고 칼이 집에 집착하는 이유를 충분히 납득시키는 명장면이다. 
 

 
나는 전에 음악과 함께 칼과 엘리가 결혼해서 함께 나이 들어가 가는 장면들만 보았는데 이번에 영화를 보니 그 앞부분이 있었다. 칼과 엘리가 처음 만나는 장면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만난 두 사람. 칼은 말이 별로 없는 무뚝뚝한 아이였지만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엘리는 쾌활하고 말도 많고 사고도 일으키지만 남이 일으키는 사고도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소녀였다. 나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제일 재미있었다. 
 

 
결국 엘리는 세상을 떠났고 칼만 남았는데, 칼은 집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월은 변하고 세상은 발전하는 법. 주변은 모두 재개발이 되어서 높은 빌딩이 올라가는데 칼은 엘리와 추억이 담긴 집을 팔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의도치 않게 폭행을 저질러 양로원에 끌려가게 될 상황에서 칼은 집에 풍선을 매달아서 집과 함께 탈출한다. 목적지는 파라다이스 폭포였다. 나의 예상은 영화가 끝날 때쯤에 폭포에 도착하는 것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칼은 이미 파라다이스 폭포 근처에 도착한다. 물론 그다음에 문제가 있어서 날아서 가지 못하고 풍선을 들고 돌아다니는 아이처럼 공중에 떠 있는 집을 밧줄에 매고 파라다이스 폭포로 걸어간다. 
 

 
여기서부터 이제 희한한 이야기가 시작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보이스카우트 아이가 날아가는 집에 함께 딸려 가게 되는 사건도 있었지만 이다음이 더 기묘하다. 화려하고 다양한 색의 새가 나오고 말하는 개들이 나온다. 말하는 개들은 실제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칼과 엘리가 동경하던 모험가 찰스 먼츠가 발명품을 개의 목에 달아둔 것이었다. 찰스는 여전히 그 새를 생포해서 데리고 갈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한참을 보다 보니 괜히 봤나 싶었다. 감동적인 이야기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황당무계한 만화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엘리가 자신의 My Adventure Book에 적어 놓은 글귀가 칼에게도 기운을 주었지만 영화를 계속 본 나에게도 보람을 주었다. 
 

Thanks for the adventure. Now go have a new one. Love, Ellie.
당신과 함께했던 모험에 감사해요. 이제 가서 새로운 모험을 즐겨 봐요. 

 

 
인생은 뭐지? 인생은 모험이었던가? 인생이 모험이라면 나는 밋밋한 모험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역동적인 모험을 즐기고 있지는 않다. 인디아나 존스 같은 일들이 있어야 모험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막 괴물도 나오고 커다란 바위도 굴러다니고 추격전도 일어나고 희한한 동물도 나오고 그래야 모험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 UP이 나에게 준 것 두 가지

첫째, 삶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좀 더 도전적인 자세를 가지게 해주었다. 모험을 해야 모험인가, 인생 자체가 모험이라면 인생에 업 앤 다운이 있어도 슬퍼하거나 우울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 모험을 잘 헤쳐나가면 되는 것이다. 인생이 끝날 때까지 모험을 즐기듯 살 수 있다면 훨씬 더 진취적으로 또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은 계속 UP UP UP으로... 
 
둘째, 나는 자녀가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엘리와 칼은 아이가 없었다. 아이를 가지고 싶었는데 불임이었던 것 같다. 만약 아이가 생겼다면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 아이가 생기면 삶은 더 복잡해지고 안정이 안 되고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인생이 모험이라면 자녀가 있는 것이 훨씬 더 좋다. 역동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좋게 말하면 재밌어지고 나쁘게 말하면 걱정과 근심이 많아진다. 그러나 인생이 모험이라면 역동성은 언제나 환영이다. 
 

🎈 이런 분에게 추천

1. 삶이 너무 어렵고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2. '결혼하면 무엇이 좋을까? 안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 5분만 반복해서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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