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말한다

[영화] 피아니스트 (2002)_부끄럽더라도 사는 게 맞다

영화는설왕은 2022. 6. 14. 09:00

2002년에 나온 피아니스트는 75회 아카데미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수상한 작품성 있는 영화입니다.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 피아니스트 슈필만의 가족이 나치의 침략에 의해 뿔뿔이 흩어지고 아우슈비츠에 끌려가거나 독일군에 의해 쫓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영화 제목처럼 피아니스트인 슈필만의 생존기를 집중해서 보여 줍니다. 결국 전쟁은 끝나고 다행하게도 슈필만은 살아남아서 다시 피아니스트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 내가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않는 이유

 

저는 전쟁 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쟁 상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주로 살거나 죽거나 그 갈림길에 있는 내용이거나 또는 인간의 존엄성을 가볍게 짓밟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전쟁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피아니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 영화라기보다는 전쟁이 일어난 상황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자가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초반에는 역시나 계속 보고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이유 때문이었죠.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는 주인공의 생존을 응원하면서 보게 되었습니다. 양가감정이라고 하죠.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감정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는 '저렇게 살아서 무엇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꼭 살아남아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후자의 감정이 어느새 더 강해졌기 때문이겠죠. 어느 순간부터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질문 1. 나에게는 슈필만이 피아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열정과 같은 것이 있나?

 

슈필만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피아노를 치고 싶은 열정을 드러냅니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건반에 손을 대지 않고 10cm 정도 위에서 상상으로 피아노를 치는데요. 영화에서는 슈필만의 상상을 피아노 소리로 들려줍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나에게 슈필만의 피아노 같은 것이 있나,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어서 몰래 숨어 있는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내가 미치도록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떠올려 봤습니다. 

 

 

질문 2. 슈필만은 자신의 재능 때문에 살아남았을까?

 

슈필만은 운이 좋아서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넘깁니다.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어서 음식을 공급받기도 하고 숨을 곳을 제공받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런 도움들이 모두 끊기고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빈집에 몰래 숨어서 살아갑니다. 당연히 먹을 것이 없죠. 그래서 빈집들을 뒤집니다. 피클이 담겨 있는 큰 깡통을 발견합니다. 큰 깡통이기 때문에 쉽게 열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귀한 식량이기 때문에 신줏단지 모시듯이 열심히 들고 다닙니다. 연장을 이용해서 깡통을 열려다가 깡통이 굴러가서 슈필만은 쫓아갑니다. 온통 깡통에만 신경을 쓰던 슈필만은 깡통을 쫓아가다가 그 깡통 앞에 서 있는 독일군 장교를 발견하죠. 독일군 장교는 슈필만에게 누구냐고 물어보죠. 슈필만은 자신이 폴란드 사람이고 유대인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독일군이 슈필만에게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자 슈필만은 피아니스트라고 정직하게 대답합니다. 장교는 슈필만을 피아노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피아노를 치게 합니다. 피아니스트라는 것을 확인하고, 아마도 슈필만의 피아노 실력에 감동을 받은 것인지 장교는 슈필만이 그곳에 계속 숨어 지낼 수 있도록 묵인합니다. 게다가 먹을 것도 종종 갖다 주죠. 나중에 그곳을 떠날 때는 슈필만에게 외투도 벗어 줍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슈필만이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만약에 솜씨가 별로 좋지 않은 피아니스트였다면 독일군이 죽였을까? 독일군 장교는 왜 슈필만은 살려두었을까? 슈필만의 재능이 아까워서? 

 

 

 

질문 3.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할까?

 

슈필만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생명을 부지합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사실은 교육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본능에 의한 것인지 모르지만 머릿속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슈필만이 살아남기를 응원하면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죠. 이렇게 구차하게 구질구질하게 살아서 무엇할까? 생명은 소중하지만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걸까? 사는 것이 하나도 재미없고 조금도 멋이 없고 조마조마하고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굳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일까?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무엇이 다를까? 그냥 멋있게 독일군에게 저항하다가 총 맞아 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멋이라도 있지 않을까? 기개라도 느껴지지 않을까? 산다는 것이 뭐 이렇게 부끄럽게 느껴질까? 가족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 생사를 확인할 수도 없고 먹을 것도 변변히 없어서 오래된 피클 깡통을 들고 다녀야 하고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 독일군 장교가 벗어준, 어쩌면은 자신의 친구와 친척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독일군의 외투를 입고서라도 살아야 하는 것일까? 뭐 이렇게 삶이 부끄럽지? 산다는 것이 하나도 재미없고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슈필만을 보고 있으니 두 가지 감정이 다 생겼습니다. 두 감정이 대등하게 들더라도 어느 한쪽이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살아야 한다는 느끼면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것이고 이렇게까지 살 필요는 없다고 느낀다면 악착같이 살 필요는 없는 것이죠. 슈필만이 후자의 경우였다면 그냥 자신이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와서 거리를 몇 분만 걸어도 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슈필만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도 슈필만이 살아남기를 빌었습니다. 결국 슈필만은 살아남아서 라디오 방송에 복귀하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도 합니다. 슈필만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군요. 

 

"기어코 살아남아주어서 고맙습니다."

 

 

 

* "피아니스트"의 메시지

 

부끄럽더라도 사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