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말한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_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영화는설왕은 2022. 7. 29. 21:00

https://youtu.be/R6r9Hncpxpg

* 영화를 보게 된 이유

나는 일본 영화를 잘 안 본다. 이유는 너무 단순한데. 그냥 한국 사람이라서. 거의 타고난 것 같은 일본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굳이 억누를 마음이 없다. 일본이 싫으니까 일본 영화도 별로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안 보려고 한다. 편견이고 선입견이라고는 것 인정. 그런데 이 영화를 본 것은 아내 때문이다.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 그리고 <다음영화>에 나오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소개를 보니 어떤 설문 조사에서 "내 인생 잊지 못할 사랑 영화"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 조제... 조제가 뭐지?

'조제'는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 이름이다. 사실은 이름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든 별칭이다. 조제는 프랑수와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라는 소설의 여자 주인공 이름이다. 그런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여자 주인공 쿠미코는 자신을 조제라고 부르라고 남자 주인공 츠네오에게 말한다. 그래서 제목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같은 제목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원작의 저자도 일본에서 인기 있는 작가이고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즉 이 영화는 기본 줄거리가 아주 탄탄하다. 이미 검증받은 작품을 시나리오로 만들었기 때문에 스토리를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중심 생각은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에 빚지고 있다.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질 거예요.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흘러간 일 년만 있을 뿐이에요.

 

 

* 다 아는 조제, 잘 몰랐던 츠네오

츠네오는 대학생이고 조제는 학교 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집에서 책을 보며 지식을 습득하는 자율학습인. 조제는 다리가 불편해서 걸을 수 없다. 그리고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고 집안 형편이 매우 좋지 않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학교를 다니지는 못 했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누구보다 강하다. 그래서 할머니가 주워온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열심히. 그래서 조제는 아는 것이 많고 요리도 잘한다. 조제는 츠네오에게 핀잔을 주기도 한다. 대학생이 그것도 모르냐고 하면서. 조제는 자신이 가진 장애 때문에 자신이 정상적으로 사랑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한다고 하더라도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언젠가는 당신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질 것이다. 우리에겐 흘러간 일 년만의 시간이 있을 뿐이라는 소설 속 문장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마음속에 간직한다. 엄마 아빠에게 버림받은 조제, 그리고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장애 때문에 사랑을 하더라도 또다시 버림받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것을 대비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조제는 츠네오와 헤어지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다. 하지만 츠네오는 그걸 모른다. 그냥 조제를 좋아하고 조제를 도와주고 조제와 함께 있고 싶어 할 뿐. 츠네오는 앞날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고 대비하지도 않는다. 

 

 

* 츠네오가 언제 조제를 사랑하게 되었지?

나는 사랑 영화에서 언제 두 사람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지 유심히 관찰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경계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그 경계를 풀 때가 있다. 그러면 조금 더 가까워진다. 사랑하는 관계가 마찬가지이다. 츠네오는 조제가 만들어 준 음식을 먹고 조제에 대해 좋은 감정을 품기 시작한 것 같다. 조제와 할머니를 도와주고  식사를 대접받은 츠네오는 처음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밥상 앞에 앉는다. 분명히 별로 맛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국을 먹고 달걀말이를 먹어 본 츠네오는 눈이 번쩍 뜨인다. 맛있네. 특별히 달걀말이에 감동을 받는다. 그러자 조제가 그 달걀말이는 자신이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맛이 있다고 말한다. 요리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조제. 츠네오는 밥을 먹으러 조제의 집에 오게 된다. 그러면서 친해지는 거지. 

 

* 조제는 독특한 캐릭터

조제는 매우 독특한 캐릭터이다.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는 이유는 조제라는 캐릭터가 주는 매력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실제로 이런 인물이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독특한 캐릭터이다. 조제가 사람들을 끌어당긴 이유는 조제가 가진 자존감이 그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조제는 요리에 자부심이 대단한다. 자신이 만든 것이니 당연히 맛이 있는 것이라고 츠네오에게 달걀말이를 자랑한 것이 츠네오의 마음을 흔든 첫 번째 말이었을 것이다. 츠네오와 헤어진 이후에도 조제는 흔들림 없는 삶을 보여 준다. 혼자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생선을 구워 먹는다. 길바닥에서 엉엉 울어버리는 츠네오와는 달리 굳건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영화가 깔끔해진 이유는 조제 덕분이다. 이별을 감지한 조제는 깔끔하게 츠네오를 보낸 준다. 사실 조제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찾아온 츠네오를 붙잡은 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떠날 거면 다시 찾아오지 말라는 말에 츠네오는 조제 곁에 한참을 머문다. 하지만 츠네오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 조제는 츠네오의 마음이 변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19금 잡지까지 선물로 주면서 이별을 한다. 사랑이 이렇게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후회와 원망과 증오가 뒤섞인 감정싸움을 한참 해야 이별이 이루어지고 그 이후에도 계속 그 앙금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조제 덕분에 지저분한 사랑의 끝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 모두 조제에게 고마워해야 할 듯. 조제의 대사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츠네오의 친구 카나에가 찾아와서 조제를 모욕한 적이 있다. 카나에는 츠네오에게 마음이 있었는데 조제에게 츠네오를 뺏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그래서 카나에는 조제에게 츠네오가 너를 사랑하고 너의 곁에 머무는 것은 네가 장애를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조제가 하는 말. "너도 다리를 잘라." 그럼 공평해지는 것이다. 과연 그 상황이라면 츠네오는 누구를 선택할까? 카나에는 아마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제는 다이빙을 한다. 요리를 할 때 부엌의 조리대를 이용해야 하는데 요리가 끝나고 내려올 때 바닥에 쿵 하고 떨어진다.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보는 사람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이영애에게 외쳤던 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사랑은 감정인데. 그게 불편하면 감정을 뺀 사랑을 원한다는 건데. 그게 사랑일까? 오히려 사랑은 변하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다. 츠네오는 조제와 이별한 후 대학생 시절에 함께 잘 지냈던 카나에와 사귀게 된다. 둘이 같이 길을 걷다가 츠네오가 갑자기 오열한다. 이 장면이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장면인데 츠네오 역을 한 사토시가 자신의 배역에 몰입해서 갑자기 애드리브로 나온 장면이라는 설이 있다. 만약 사토시가 그랬다면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츠네오는 이별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자신의 경우에는 오직 한 가지라고 고백한다. 자신이 도망쳤다고. 사실이다. 츠네오는 지쳤고 더 이상 조제와 힘든 사랑을 할 삶의 에너지가 없다. 사랑하면 뭐든지 가능할 것 같지만, 그래서 사랑하면 극복하지 못할 것 같은 일이 없지만, 사람은 사람일 뿐이다. 생각이나 감정과는 달리 현실 속 한계를 가지고 살아간다. 츠네오가 조제를 업어 주면서 힘들다고 휠체어를 사자고 말하지만 조제는 허락하지 않는다. 그냥 이것만으로도 힘든 일이다. 현실적인 츠네오는 자신이 나이들어서까지 조제를 업어줄 수 없다고 말한다. 조제는 왜 그랬을까? 전동 휠체어를 샀다면 츠네오가 조금 더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조제는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다. 어차피 츠네오는 떠날 것이고 그렇다면 사귀는 동안이라도 좀 더 업혀 다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츠네오가 조제와 헤어진 후 오열하는 장면은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한 인간이라는 연약한 종족의 한계를 보여 준다. 츠네오의 사랑이 변해서 그를 욕할 수 있을까? 조제도 그냥 받아들였는데, 우리가 츠네오를 나무랄 수 있을까? 나라면 도망치지 않았을까? 나는 시작도 안 했겠지. 그렇다면 그게 더 좋았을까? 어차피 헤어질 사이 시작도 안 하는 것이 옳았을까? 그랬다면 조제는 쓰라린 이별의 슬픔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호랑이도 못 봤을 것이다. 이별이 예정되어 있다면 사랑도 하지 않는 것이 맞을까? 

 

* 떴다 떴다 비행기

사랑은 다 변한다. 비행기 같은 거다. 연료를 써서 엔진을 돌리지 않으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한 번이라도 날아봤으면 안 날아 본 것보다 낫다. 조제 생각이 그랬고 내 생각도 그렇다. 어차피 땅에 떨어질 것인데 뭐하러 나냐라고 한다면 그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한데, 그래도 날아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사랑을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모아서 비행기를 띄우고 있는 것이다. 츠네오는 그걸 못해서 폭풍 오열한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과 사랑한다는 것은 훨씬 더 힘든 일이다.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 낸다. 그러니 아무도 함부로 츠네오를 욕할 수 없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안다. 츠네오가 진심이었다는 것을.

 

 

* 한 줄 대사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사랑은 변한다. 사랑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고독도 변한다. 고독했다가 고독이 끝나기도 한다. 그리고 또 시작하기도 하고. 삶도 그렇다. 시작하고 끝이 나고. 다 그렇다. 모든 게 다 그렇다. 다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