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말한다

[영화] 타인의 삶 (2006)_꼭 숲을 봐야 할까?

영화는설왕은 2022. 7. 1. 16:19

https://youtu.be/xRSMg9e0zvw

* 영화 소개

2006년에 개봉한 독일 영화입니다. 플로리안 헨겔 폰 도너스마르크가 각본을 쓰고 감독을 했습니다. 동독 시대에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던 국가 보안부 소속의 비밀경찰이 드라이만이라는 작가의 삶을 감시하는 내용이 주요한 줄거리를 이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2006년에 열린 독일 영화제에서 11개 부문에 걸쳐 수상 후보에 올랐고 7개 부문에서 수상한 영화로 작품성이 있는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뿐만 아니라 흥행에도 성공을 했습니다. 

 

 

* 전체적인 느낌

전에 독일 영화를 본 적이 있던가 하고 생각하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독일어가 귀에 익숙해서 거부감이 없이 영화를 볼 수 있었고 동독 시대를 묘사한 영화는 처음이라서 시대 배경을 너무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우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해가 안 되면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전체적으로 줄거리가 단순하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비슬러가 드라이만을 계속 도청하면서 감시하는데 드라이만은 동독의 국가 체제에 위협을 가할 수도 있는 일을 저지릅니다. 서독의 슈피겔이라는 잡지에 동독의 자살률에 대한 기고를 합니다. 동독의 자살률은 1977년 이후로 발표를 하고 있지 않지만 점점 더 늘어가고 있었고 드라이만이 존경하는 선생님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연출을 하지 못하다가 어느 날 자살을 했는데 이와 같은 동독의 현실에 대해서 알리는 글을 씁니다. 드라이만의 연인이었던 크리스타를 협박해서 드라이만이 사용한 타자기가 어디에 숨겨 있는지 알아내고 크리스타는 보안부 요원들이 쳐들어 집을 뒤지는 순간에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후회하고 자동차에 달려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하지만 비슬러가 미리 들어와서 드라이만의 타자기를 숨깁니다. 드라이만은 무사할 수 있었지만 비슬러의 반역을 눈치챈 그의 상관은 그를 우편국의 말단 직원으로 좌천시켜 버립니다. 시간이 흘러 독일은 통일이 되었고 드라이만은 자신이 도청당했지만 비슬러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드라이만은 새로운 책을 쓰고 그 책의 앞장에 비슬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이 책을 바친다고 씁니다. 비슬러가 그 책을 한 권 사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 비슬러는 왜 드라이만을 도왔는가?

비슬러는 냉혈한으로 나옵니다. 위대한 동독을 위해서 불순분자를 가려내서 엄단에 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드라이만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사람입니다. 드라이만은 성공한 작가였고 겉으로도 멋있게 보이는 사람이었고 그의 연인은 아름다운 배우인 크리스타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동정심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재수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비슬러는 드라이만에게 의심할 만한 구석이 없다고 말하는 그루비츠의 의견에 반대하며 그를 감시하겠다고 말합니다. 비슬러는 드라이만을 재수 없게 생각했고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고 개인적으로 드라이만에게 도움을 받았거나 친분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비슬러는 드라이만을 돕습니다. 결국은 드라이만이 쓴 타자기를 미리 없애고 자신이 좌천당하는 꼴을 당하기까지 드라이만을 돕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비슬러가 드라이만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드라이만의 삶의 모든 순간을 유심히 관찰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드라이만은 그냥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동독의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불순한 생각을 가진 악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동독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비슬러는 그의 삶이 불행해지는 것을 알게 되죠. 그것은 그의 탓이 아니라 동독이라는 나라를 유지하기 위한 공산주의 체제 때문이었습니다. 시스템이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1. 드라이만이 존경하는 선생님은 연출가였지만 블랙리스트에 올라 아무런 일도 맡을 수가 없었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선생님은 자살을 합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그의 책임이 아니라 바로 체제의 문제였습니다. 

 

2. 크리스타와 드라이만은 연인 관계였지만 장관이 크리스타와 육체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크리스타는 원하지 않았지만 어떤 공연이 올라갈 것인지 그 공연에 누가 출연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정부였기 때문에 크리스타는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비슬러는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인지합니다 

 

3. 비슬러는 드라이만의 집에서 시집을 하나 가지고 나옵니다. 브레히트의 시집인데요. 그 시집을 읽으면서 또한 감동을 받습니다. 찾아보니 브레히트의 시 중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가 유명하더군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불의한 체제에서 살아남았다면 그 사람이 강한 자였다는 것을 의미하죠.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숲의 관점에서 보면 강한 나무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미 울창해진 숲이라면 작은 나무는 햇빛을 받지 못해서 크게 자라나지 못하고 중간에 고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숲을 보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때로는 나무를 주의 깊게 봐야 하지 않을까요? 

 

* 시스템이 무너질 때 살아남는 방법은?

시스템이 무너질 때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는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위로 올라가려면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요. 그러려면 다른 사람을 짓밟든가 아니면 어마 무시한 성과를 내든가 둘 중에 하나를 해야죠. 오징어 게임 같은 것이죠. 시스템은 무너지고 있고 위로 올라가는 한 사람만 살아남습니다. 어떻게 보면 시스템이 살아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런데 비슬러는 깨닫습니다. 내가 살리려고 하고 있는 이 체제가 나를 죽이고 나의 평범한 이웃들도 죽이고 있구나. 그리고 시스템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멈춥니다. 시스템은 이러한 자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결국 내가 죽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비슬러는 도저히 드라이만을 죽일 수 없습니다. 죽여야 하는 것은 드라이만이 아니라 시스템이죠. 우리를 살게 해 준다고 믿었던 그 시스템이 우리를 죽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드라이만을 죽여야 한다면 또 다른 드라이만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아니죠. 또 다른 드라이만이 나타날 것입니다. 독일의 자살률이 늘어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였습니다. 죽여야 하는 것은 시스템이지, 드라이만이 아니었습니다. 

 

 

* 국가라는 괴물

우리는 국가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가 없는 백성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반에 있었던 일제 강점기는 그 시절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에게도 기억이 되어 머릿속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합니다. 근대 국가가 발생할 때 사람들은 국가만이 합법적으로 공권력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습니다. 그 대신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해 준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토마스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국가가 나서서 막겠다고 한 것이죠. 그래서 실제로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도 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국가가 합법적으로 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는 서로 전쟁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 전쟁에 참여했지만 사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국가라는 조직이 그들을 죽인 것이기도 합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에 만약에 군사력을 가진 근대 국가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더 큰 희생이 있었을지 그렇지 않았을지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오히려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고 그들의 삶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은 "타인의 삶"이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