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말한다

[영화] 패신저스 (2016)_오로라는 행복을 찾은 것 같은데...

영화는설왕은 2022. 8. 25. 17:14

지구를 떠나서 새로운 행성으로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들이라고 말하기가 좀 어색한 것은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사람다운 사람은 세 사람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잠깐 나올 뿐이고 곧 영화는 끝난다. 결국 주인공인 두 남녀 배우의 역할이 매우 컸던 작품이다. 당연히 인기 있고 유명한 배우를 써야 하는 상황이었고, 크리스 프랫과 제니퍼 로렌스가 주연을 맡았다. 

 

 

* 과학적인 오류? 

나무위키에 보니 이 영화에 나오는 과학적인 오류를 가득 써 놓았다. 나는 이런 지적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가 다 말이 안 돼서 그걸 지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일단 지구 외에 인간이 살 만한 행성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거의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지구와 비슷한 환경 속에 있다고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직접 조사를 해 봐야 하는데 그렇게 조사할 수 있는 가까운 행성이 어디 있는가? 없다. 그래도 일단 발견했다고 치자. 어떻게 갈 것인가? 이것도 불가능하다. 적어도 몇십 광년 떨어진 곳일 텐데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아발론 호는 0.5c 즉 광속의 절반 속도로 움직인다고 하는데... 어떻게? 지구의 대기권을 탈출하기 위한 속도는 초속 11km이다. 그런데 0.5c는 초속 15만 km이다. 너무 차이가 크지 않나? 120년 동안 냉동 수면에 들어가 있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것이지 과학적으로 가능하다고 증명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걸리는데 굳이 과학적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 질문: 오로라는 왜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오로라는 뉴욕에 살고 있는 작가이다. 아버지도 작가인데 퓰리처 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저명한 작가이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오로라도 역시 재능 있는 작가로서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로라가 홈스테드 2로 떠날 때 친구들과 함께 벌인 환송회에서 친구들은 오로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여기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잖아. 늘 뭔가에 목말라 있었지... 그곳에 가서 정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서 마음을 열기를 바라. 꼭 근사한 일을 해야만 행복해지는 건 아니야. 그냥 삶을 즐겨. 모험도 하고."

 

왜 그랬을까? 왜 오로라는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오로라의 계획은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달랐다. 아발론 호에 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홈스테드2에 가서 정착할 계획이었지만 오로라는 왕복 티켓을 끊었다. 홈스테드 2에서 1년간 살다가 돌아와서 홈스테드의 경험을 글로 쓰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원대한 계획이다. 식민 행성에서 직접 살아본 세계 최초의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 대답: 자의식 과잉의 시대

내가 볼 때 오로라가 한 번도 행복하지 못했던 이유는 '자의식 과잉'이었던 것 같다. 나는 '자의식 과잉'이 현대인들이 가진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너무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오로라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꿈, 자신의 경험, 자신의 명성, 자신의 글, 이런 것들이었다. 친구가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마음을 열라고 말이다. 오로라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열지 못했다. 왜일까? 오로라는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자의식이 있어야 하고 18세기 계몽주의를 통해 인류는 개인에 대한 의식을 꽤나 발전시킬 수 있었다. 공동체보다는 나라는 한 개인을 더 중요한 존재로 생각할 수 있는 철학적 역사적 계기들이 마련되었고 현대에까지 그런 경향은 이어져 왔다. 자의식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현대인은 자의식이 지나친 경우가 많다. 

 

 

* 종교가 외면받는 이유

현대인들이 종교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드는 것도 이런 경향과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려고 한다. 세상도 자꾸 그런 질문을 던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맛있게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너의 인생'을 살라고 말한다. 하지만 종교를 가지고 신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자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신을 믿고 신을 생각한다는 것은 나를 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신의 관점에서 보겠다는 것이다. 나의 관점에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존재이다. 그러나 신의 관점에서는 어떨까?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의 관점에서 보아도 나는 중요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제일 중요한 존재는 아니다. 신의 관점에서 나를 본다는 것은 자의식에서 벗어나는 시간이다.

 

 

* 사람은 언제 행복할까?

사람은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면 행복해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벗어날 때 행복감을 느낀다. 우리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정말 행복했던 때를 기억해 보라. 그 대상이 사람이든 아니면 사물이든 중요하지 않다. 어떤 대상에게 완전히 빠져서 자의식이 사라지는 때에 우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하루 종일 다른 누군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면 그 사람은 그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사랑하는 그 사람만을 생각한다. 게임의 즐거움에 빠진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그 사람은 게임에 빠져서 자기 자신을 돌보지도 않고 게임에 완전히 몰입한다.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게임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사람은 자의식 없이 그것에 빠져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 

 

* 영화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영화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극장에서 보았다면 꽤나 웅장한 장면이 많았을 것 같고 CG도 꽤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주인공의 멋짐이야 두 말할 것도 없고 전체 줄거리나 독특한 설정도 나쁘지 않았다. 중간에 적당하게 감동적인 장면도 들어가 있고 결론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호평을 받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현대인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 큰 문제이 않았을까 싶다.  개인의 삶은 존중받아야 하는데 제임스는 오로라를 일부러 깨웠다. 제임스는 오로라의 삶을 망쳤다. 오로라의 삶을 망친 사람이 너무 멋있는 사람이어서 사랑에 빠지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현대인은 타인이 자신의 삶에 함부로 침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로라는 제임스를 결국 용서했지만 관객들, 특별히 현란한 지식으로 영화를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용서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로라가 제임스를 깨웠다면 영화에 대한 평은 좀 달라졌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남자들 때문에 여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많았다. 그것을 깨달은 것이 얼마 되지 않았고 그래서 이 영화에서 제임스가 오로라를 깨우는 것은 대단히 거슬리는 사건이다. 

 

 

* 그들의 삶은 평온했을 것 같다

나는 영화에서 막판에 편안함을 느꼈다. 중간에 갈등도 있고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예상대로 갈등은 풀어지고 위기는 잘 극복했다. 그리고 나서 제임스와 오로라는 결정해야 했다. 오토닥이라는 기계를 이용해서 한 사람은 다시 냉동 수면 상태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제임스는 오로라에게 다시 냉동 수면 상태로 들어가라고 권면한다. 오로라는 대답하지 않고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보여준다. 만약 오로라가 다시 냉동 수면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 홈스테드 2에 도착하게 될 사람들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고 아발론 호의 중앙홀이 정원이 된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만약 두 사람이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50년 정도 같이 살다가 죽었을 것 같은데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 나는 영화에 나오지 않은 그 50년 정도의 삶이 평화로웠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사람밖에 없어서 좀 심심하기는 했겠지만 경쟁할 필요도 없고 반드시 해야 할 일도 없고 누군가를 시기 질투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 편했을 것 같다. 먹을 것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고 살 곳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으니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