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말한다

[영화] 시월애_시월애로 시월애하기

영화는설왕은 2022. 9. 9. 17:41

나는 분명히 이 영화를 재밌게 봤는데 이 영화는 대박을 터뜨리지는 못했다. 2000년 9월 9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서울 기준으로 30만 관객을 넘지 못했다. 30만이라면 그 당시에 어느 정도 성적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다지 이슈가 되지 못했던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비슷한 주제로 나온 '동감'이라는 영화는 흥행에 꽤 성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이 영화를 본 것은 아마도 2001년 정도였을 것 같다. 영화관에서 보지는 않았으니까 개봉한 이후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본 것 같다.  

 

* 대강의 줄거리

시간을 넘는 사랑 이야기이다. 성현(이정재)과 은주(전지현)는 2년의 시간 간격을 두고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교감한다. 그러다가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만나려고 했는데 엇갈리고, 다시 관계를 정립했다가 또 다른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영화이다. 

 

* 오해 1

분명히 이 영화를 봤고 집중해서 봤는데 줄거리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20년 전에 본 영화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시월애라는 제목도 10월에 하는 사랑인가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시월애는 시간을 뛰어넘는 사랑이라는 뜻으로 붙인 제목이다. 영어로는 타임슬립(Time Slip) 영화라고도 하는데 시월애는 때 시, 넘을 월, 사랑 애를 이용한 제목인데 제목은 진짜 잘못 지은 것 같다. 시월OO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데... 억지로 만든 말이고 잘 쓰지 않는 말이라 내가 오해했다. 

 

 

* 오해 2 (스포일러 포함)

영화의 결말을 잘못 알고 있었다. 영화를 봤을 때는 분명히 알았을 텐데 시간이 지나서 그 기억이 희미해지자 영화가 주는 이미지로 기억을 새로 만들었던 것 같다.영화의 전체 분위기가 하도 침울해서 그랬던 것도 같고 OST에 나온 노래도 계속 '굿바이'라는 가사가 나와서 비극이라고 기억했던 것 같다. 영화 포스터도 그렇고... 사랑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고 하니까, 늦게 알아서 결국 놓쳤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영화를 봤는데도 영화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비극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해피 엔딩인데 비극으로 기억하고 있다니...

 

 

* 영화를 다시 본 이유

오늘이 2022년 9월 9일이니까 영화가 개봉한지 정확히 22년이 되는 날이다. 아마도 나는 20년 전쯤에 이 영화를 봤고 대단히 흥행한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이 영화 참 괜찮네'라고 느꼈다. 우리나라 영화도 꽤 볼만하네라고 느꼈던 몇 안 되는 영화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흥행이 안 되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20년 전에 <시월애>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영화를 보게 되었다. 20년 전의 나를 알고 싶어서 다시 영화를 보게 되었다. 

 

* 20년 전 내가 좋아했던 것 1: 바다 위에 있는 외딴집 '일 마레'(il mare)

 

 

성현은 바다 위에 있는 집에서 산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큰 서해의 갯벌 안쪽에 지어진 집이다. 썰물이 될 때는 땅 위에 지어진 집이지만 밀물이 될 때는 바다 위에 있는 집이다. '일 마레'라는 이름은 바다라는 이탈리아어이다. 아마도 이 집이 일단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복작대지 않고 여유로운 공간에 자연만을 벗 삼아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집을 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2022년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저런 집에서 어떻게 살지?' 무섭고 외롭고 추울 것 같았다. 이웃도 하나도 없고 차디찬 바다 위에 쇠로 지어진 듯한 집이 보기만 해도 추웠다. 20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매우 달랐다는 것을 확인했다. 

 

* 20년 전에 내가 좋아했던 것 2: 물고기

 

 

나는 20년 전쯤에 물고기를 좋아해서 우리집에는 어항이 많았다. 성현과 은주가 길렀던 물고기는 고스트 피시라고 하는 물고기이다. 블랙 고스트라고도 부르는 이 물고기는 보시다시피 다른 물고기와 모양이 매우 다르다. 그래서 나고 기르고 싶었던 물고기 중에 하나였는데 사육 난이도가 어렵다고 해서 시도를 하지 못했다. 괜히 키웠다가 금방 죽을 것 같아서 시도도 안 했다. 영화에서는 성현이 블랙 고스트를 바다에 풀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도 깜짝 놀랐는데 다시 봤을 때도 깜짝 놀랐다. 아무 생각 없이 영상미만 추구하다 보니 자기가 기르던 담수용 물고기를 바닷물에 풀어주어서 아름답게 죽이는구나, 하면서 놀랐다. 

 

* 20년 전에 내가 좋아했던 것 3: 제주도

 

은주는 제주도 출신이다. 은주가 살았던 곳은 정확히 제주도가 아니라 우도이다. 제주도에서 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인데 여기에는 산호사 해변이 있다. 영화에서도 아름답게 나오는 이 산호사 해변 때문에 많은 사람이 우도를 찾는다. 영화에서 봤을 때도 '와, 우리나라에 이런 해변이 있었나' 했다. 영화에서는 정말 아름답고 깨끗한 곳으로 나오지만 2002년에 내가 갔을 때는 생각보다 깨끗하지 않고 또 매우 아담해서 다소 실망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산호사 해변은 매우 희귀한 것으로 알고 있다. 

 

* 마치는 말

20년 전에 내가 좋아했던 것 세 가지 중에 두 가지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 있는 외딴 집에 대한 로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집을 거저 주고 살라고 해도 못 살 것 같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는 여전하다. 나는 지금도 물고기를 좋아하고 제주도를 좋아한다. 오래된 영화를 보면서 오래전에 그 영화를 봤던 나를 떠올려봤다. 이것도 일종의 시월애 아닐까?

 

* 나의 제안

오늘밤은 옛날에 재밌게 봤던 영화를 보면서 과거의 나와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