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말한다

[영화] 아바타: 물의 길(2022)_인류의 미래를 나비족에게서 찾을 수 있을까?

영화는설왕은 2023. 1. 3. 21:44

세 시간 러닝 타임에 3D 관람이 필수인 <아바타: 물의 길>은 관객들을 주저하게 만든다. 얼마나 대단한 볼거리를 제공하길래 비싼 3D 관람료를 지불하면서 세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쇼츠와 틱톡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나도 사실 주저했다. 3시간까지 집중할 수 있을지 나 자신의 능력을 확신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3D로 관람하기도 했다. 거추장스러운 3D안경을 쓰고 다소 어색한 입체 화면을 봐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줄거리

판도라 행성에서 가족을 이룬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지구인들이 다시 판도라 행성에 돌아온다. 물론 놀러 온 것은 아니고 이제는 인간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에 정착하기 위한 침략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1편에서 원한 관계에 있었던 마일스 쿼리치가 대장이 되어 설리와 그의 가족을 추격한다. 설리 가족은 숲종족인데 그들이 부족 마을에 남아 있으면 전체 부족이 위험해질 것을 염려하여 지도자의 자리를 내어놓고 떠난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물의 종족이 살고 있는 곳이다. 거기서 적응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쿼리치가 찾아낸다. 찾아냈으면 가만있을 리가 없고. 설리를 죽이러 오는 쿼리치와 그의 군대, 그리고 그에 맞서는 설리 가족과 물종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왜 자꾸 싸워? 

나는 할리우드 영화를 잘 안 본다. 미국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세계 최강대국으로 살아오면서 저절로 생긴 교만이 있다. 성품이 나쁜 사람은 교만이 오만이 되기도 한다. 성품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교만함을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좀 둔한 편이어서 그런 것을 잘 느끼지 못했지만 미국에서 10년 정도 살면서 확실히 그런 것을 느끼게 되었고 미국에 있을 때는 일부러 미국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는 안 보게 되었다. 그래도 가끔 한 번씩 보면 다시 한번 그들이 가진 교만을 확인하고는 한다. 항상 강자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나 나라가 가지는 특징이 있다. 그들은 싸우고 싶어 한다. 미국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전쟁을 통해서 발전한 나라이므로 더 그런 호전적 성향이 강한 것 같다. 강한 나라는 싸우고 싶어 한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와 싸우면 아주 합법적으로 약한 나라가 가진 것을 뺏을 수 있다.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서 이긴 나라가 진 나라의 땅을 뺏는다고 하자. 그게 합법적인지 아니면 합리적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것을 바라보는 다른 나라들은 그러려니 한다. 만약 전쟁이 아닌데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면 어떨까? 만약에 미국이 그렇게 나온다면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국제적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전쟁이 난다면?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가능하다. 그래서 강한 나라는 싸우고 싶어 한다.

 

기득권 세력에 속한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득권 세력에 오랫동안 속해 있던 사람들은 호전적인 경향이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싸우고 싶어 한다. 싸우면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하니까 싸우고 싶은 거다. 강자는 싸우면 지금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 약자는 그런 자세를 가지기 어렵다. 싸우면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있다. 그러니 약자는 최대한 싸움을 피하는 것이 좋다. 강자는 평화를 좋아하지 않고 경쟁하자고 하고 싸우자고 하는 경향이 있다. 

 

"아바타:물의 길"도 그런 경향이 느껴진다. 판도라 행성을 공격하는 지구인들이야 그 행성을 빼앗으려고 하니까 당연히 호전적인 성향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먼 훗날의 인류도 과연 그럴까? 무작정 전쟁을 일으켜서 뺏으려고 할까?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으므로 싸우려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비족은 어떤가? 그들도 역시 강자의 정신이 있다. 설리 가족을 비롯한 숲 종족도 그렇고 물 종족도 그렇고 단순히 저항이나 보호 차원에서 전투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저항이라면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볼 수 있었던 처절함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나비족도 강자의 정신이 가득하다. 싸우고 싶어 하고 싸우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여러 가지 장점도 많은 나라인데 늘 강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생긴 호전성과 평화를 우습게 보는 듯한 태도가 드러날 때가 많다. 

 

인류는 어떻게 구원을 받을 것인가?

근대 이후로 인류의 태도는 경쟁해서 이긴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식의 태도였다. 그래서 정말 경쟁에서 이긴 나라는 잘 살았다. 땅을 차지하고 다른 나라에서 자원도 빼앗고 심지어는 정복한 나라의 사람들까지도 사고팔고 마구 이용해 먹으면서 번영을 누렸다. 제1세계의 번영은 제3세계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한계에 다다랐다. 일단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나서 힘이 세다는 이유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용하는 것,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은 지탄을 받게 되었다. 또한 무한대의 발전 경쟁은 자원의 사용을 부추겼고 화석 연료를 급격하게 사용하면서 지구의 이산화탄소량이 늘어서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이 있었다. 그들은 자연을 제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자연의 변화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고 자연의 여러 가지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고 때로는 대규모 토목 공사로 자연의 모습을 바꾸면서 자연을 우습게 알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수였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높아지고 이상기후가 자주 발생했다. 그러면 여기서 인류는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과학의 발전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인간이 살 수 있는 판도라와 같은 행성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망상이다. 인류는 어떻게든 지구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아바타: 물의 길>에서 제시하는 구원의 길은 무엇일까? 나비족과 같은 자연친화적인 태도는 어떤가? 좋아 보인다. 인디언 부족들이나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자연친화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태도를 가지면 될까?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면서 계속 강자의 마음을 느꼈는데 나비족에게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 그들이 자연친화적인 태도를 가졌던 것은 평화와 협력의 정신이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자연을 두려워해서 그런 태도를 가졌을 수 있다. 만약 그들이 평화와 협력의 정신이 있었다면 다른 부족과도 그런 태도를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부족 중심적인 태도를 취했고 그런 태도는 종족 전체의 발전을 더디게 한다. 

 

인간이 취약한 신체 능력에도 불구하고 지구를 온통 뒤덮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은 협력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평화스럽게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다. 따라서 인간은 지구에서 우세종이 될 수 있었다. 여기서 잘못된 판단은 인간은 지구 전체 환경과 싸워서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구는 싸워야 할 대상도 아니고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도 아니다. 

 

 

인류의 미래를 나비족한테서 찾을 수 있을까?

영화는 장난이 아니다. 특별히 <아바타: 물의 길>과 같은 영화는 장난이 아니다. 30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되었고 약 2조 5000억 이상의 수익을 거둬들여야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다고 하니 영화 제작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영화는 돈을 벌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려면 사람들에게 매력을 발산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매력을 발산하려면 그들에게 재미를 주든 메시지를 주든지 간에 뭔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도 않을 영상을 세 시간 동안 앉아서 볼 이유가 없다. 이와 같은 대작 영화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아바타: 물의 길>이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준다. 일단 내가 동의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1. 인류의 신체 능력은 점차로 더 좋아질 것이다. 

나비족은 인간보다 훨씬 더 크고 동작도 빠르고 힘도 세고 신경 조직이 바깥에 나와 있어서 다른 생명체와 접속이 가능하다. 신경 조직이 밖으로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인데, 신체 능력이 좋아질 것 같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사람은 머리를 쓰는 종, 호모 사피엔스이지만 머리가 비대해질 것 같지는 않다. 옛날에 나온 영화 중에는 미래의 인류나 지구보다 문명이 더 발달한 외계인들이 팔다리는 빈약하지만 머리가 매우 큰 모습으로 묘사되고는 했다. 나는 거기에 반대한다. 뇌가 더 커질까? 뇌가 더 커질 필요가 있을까? 그것보다는 신체 능력이 더 발달할 것 같다. 이성적인 능력은 머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신체 능력이 좋은 사람이 머리도 더 잘 쓰고 더 오래 쓸 가능성이 높다. 사람이 오래 살면 그만큼 더 똑똑해질 수도 있는데 그러려면 다른 신체 능력이 좋아져야 한다. 

 

2. 지금보다 훨씬 더 자연친화적인 성향을 띨 것이다. 

지금쯤은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 아직도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자연은 정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은 자연 속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나비족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느낌을 준다. 특별히 사람이 죽었을 때 장례식을 거행하면서 사람을 자연에게 돌려준다는 표현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자연에게서 에너지를 받아서 사람이 태어나고 사람이 죽으면 그 에너지를 다시 자연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에너지의 순환이라는 관점으로 자연과 생명을 이해하면 사람이 죽을 좀 덜 슬플 수 있다. 자연에게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받았다가 다시 주는 것이고 주었다면 언젠가는 다시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만약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다면 죽음에 대해서도 좀 더 유연하고 느긋하게 대응할 수 있다. 주고받음의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테니까. 영원한 승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린다면 싸움도 좀 줄어들지 않을까?

 

인류의 미래를 나비족한테서 찾을 수 있을까? 대략 방향은 맞는 것 같은데 조정이 필요할 것 같다. 은근히 싸우고 싶어 하는 마음을 버릴 수만 있다면 아주 바람직한 삶의 모습일 것 같다. 

 

 

볼까?

<아바타: 물의 길>은 봐야 한다. 이유는.

1. 2022년에 인간이 영상을 어느 정도까지 만들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영화이다.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와 같은 것이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물건이 될 것이다. 

2. 지금까지 나의 상상력은 너무 빈약하지 않았는지 반성을 하게 해 준다. 인간은 현실 속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 수 있다. 제임스 카메룬의 상상력이 만든 세상을 보라. 아주 볼 만하다. 

3.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인류의 미래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인류의 미래상이라고 할까? 그러면서 미국 사람이 제시하는 인류 미래상의 한계도 엿볼 수 있다. 세계 최강대국의 한계를 드러내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