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말한다

[영화] 내 사랑 (2016)_모드만이 행복했다

영화는설왕은 2023. 1. 26. 17:41

https://youtu.be/owsU3mp63o8

 

2016년에 세상에 나온 이 영화는 캐나다의 화가 모드 루이스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이다. 모드 루이스가 누구인지 모르는 나로서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 영화였지만 여주인공 때문에 본 영화였다. 샐리 호킨스가 모드 루이스 역할을 했는데 스쳐 지나가다 본 화면에 나타난 호킨스는 영화의 여주인공 같지 않았다. 보통의 영화에서 나오는 여자 주인공이 가지는 매력이 전혀 없었고 몸이 불편하고 지능이 살짝 부족한 한 여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화면의 때깔이 좀 떨어지고 남자 주인공 역시 아주 평범하게 보였다면 이것이 상업 영화인지 유튜브 동영상인 구분을 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오히려 나의 눈길을 끌었다. 

 

* 추천하는 이유

세 가지 이유로 이 영화를 추천한다. 첫째, 샐리 호킨스의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볼 만한 영화이다. 둘째,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셋째, 장애가 있었던 한 사람의 인생을 지켜보면서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이다. 나는 첫째와 셋째 항목에 속했다. 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모드 루이스라는 화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추천하지 않아도 알아서 볼 것 같다. 이 영화는 모드 루이스의 삶을 고스란히 담으려고 노력한 작품이므로. 영화에는 루이스가 그린 유명한 그림이 몇 점 나온다. 루이스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영화에서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 반가울 것 같다. 여기까지 설명을 보고 영화를 보실 분들은 일단 보시고... 다음 내용은 스포일러가 있다.

 


* 줄거리

모드 루이스는 심한 류머티즘 관절염이 있어서 몸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고 걷는 것이나 행동에도 불편함이 있다. 무척 가난했던 모드는 자신이 살던 집에서 나와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모드는 에베렛이 가정부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그의 집에 찾아간다. 몸도 불편한 모드가 먼 거리를 걸어 찾아오자 에버렛은 아주 매몰차게 내쫓아버리지는 못한다. 집을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된 모드는 에버렛에게 수모를 당하더라고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애를 쓴다. 에버렛의 집은 매우 좁은 집이다. 1층은 공간이 거의 없고 2층에서 잠을 잘 수 있는데 침대로 하나뿐이다. 한 침대에서 남녀가 같이 자야 하는 난처한 상황이지만 모드는 마다할 형편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이 예상하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영화에서 모드는 슬기롭게 대처하지만 실제로는 어땠을까? 지금 시대 사람들이 볼 때는 그냥 말도 안 되는 노동력 착취에 성폭행까지 이어지는 끔찍한 상황이다. 당장에라도 신고해서 에버렛에게 콩밥을 먹여야 할 것 같은 불편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모드는 버틴다. 버티는 것 말고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모드의 남편 에버렛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에버렛은 영화에서 츤데레로 나오는데 글쎄 과연 그랬을까 싶다. 에단 호크가 에버렛 역할을 했기 때문에 차갑고 무례한 태도로 모드를 대할 때도 잘 생긴 배우가 주는 매력이 반감을 줄이는 효과를 주었던 것 같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모드는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물감이나 캔버스 살 돈이 넉넉하지도 않았으므로 집안 곳곳에 그림을 그린다. 영화에서도 정말 빼곡하게 그림을 그리지만 실제 모드가 살았던 집에는 그보다 더 심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모드의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 덕분에 모드는 유명해지고 방송에도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모드는 에버렛과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를 출산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기형이 심해서 죽었다고 사람들이 모드에게 알려주었는데 사실은 입양을 보냈다는 것을 모드의 이모가 나중에 그에게 알려준다. 모드는 에버렛과 함께 자신의 딸을 입양한 집 근처에서 자신의 아이를 멀리서 바라본다. 모드는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에버렛은 계속 못되게 굴면서 시간이 지나자 모드는 죽는다. 죽으면서 에베렛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랑받았어요. 나는 사랑받았어요."

 

그리고 에버렛은 집에 혼자 돌아오고 작은 통 안에 자신이 가정부를 구한다고 붙여 놓은 전단지를 모드가 가지고 있었던 것을 확인한다. 그림을 판다는 광고판을 집 밖에 두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집에 들어오면서 문을 닫고 영화는 끝난다. 

 

그림을 그리는 모드 루이스

* 질문: 왜 모드는 자신이 사랑받았다고 느꼈을까?

영화를 보면 에버렛이 루이스에게 끔찍한 말을 한다.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번 한다. 이건 결정타이다 싶은 말만 두 번은 있었다. 첫 번째는 집안의 서열에 대한 것이었는데, 에버렛은 자신이 서열 1순위, 그다음은 개, 그다음은 닭, 마지막이 루이스라고 말한다. 듣는 사람을 깡그리 뭉개버리는 말이었지만 두 사람의 만남 초반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루이스가 유명해져서 그림도 많이 팔고 그림을 판 수입도 꽤 되었던 시점에 두 사람 사이에 또 큰 말다툼이 벌어진다. 날마다 자신의 집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이 싫었던 에버렛은 루이스 때문에 자신의 삶이 불행해졌다고 말한다. 그때도 끔찍하게 말했다. 루이스 덕분에 돈도 꽤 벌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에버렛은 돈을 밝히는 사람이기도 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루이스는 참지 못하고 집을 나와버린다. 나중에 에버렛이 사과하고 다시 같이 살게 되지만 에버렛은 말을 너무 심하게 했다. 나라면, 아니 누구라도 그런 모욕을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루이스는 마지막 임종 직전에 "나는 사랑받았다"라고 말하고 떠난다. 모드의 삶은 어땠을까? 영화에서 다룬 에버렛의 말이 그 정도였으면 실제로는 훨씬 더 심한 말을 아주 자주 했을 것 같다. 모드는 자신의 삶에서 90%는 제대로 대우를 못 받았던 것 같고 10% 정도만 사랑을 받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 10%로 자신의 삶 전체를 사랑받은 것으로 칠해버렸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나는 90% 사랑을 받고 10% 미움을 받는 것도 못 참을 것 같다. 나에게 에버렛 같은 배우자가 있어서 나에게 나쁜 말을 찍찍 해대면 나는 용서하기 힘들 것 같다. 사랑받았다고 에버렛에게 말해주기 어려울 것 같다.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드는 말로 심하게 폭력을 당했는데 그것을 용서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볼 때 모드는 사랑받지 못한 것 같은데 그는 사랑받았다고 에버렛에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판단은 아무 필요 없다. 모드가 사랑받았다고 말하는 순간, 에버렛은 모드를 사랑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놀라운 말의 능력이고 모드는 그림만 예쁘게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모드는 에버렛까지 예쁘게 그렸다. 

 

모드가 그린 그림

 

* 예술이 너를 구원하리라

모드는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오히려 불행할 수 있는 조건을 아주 골고루 갖추었다. 류머티즘 관절염을 겪어서 몸이 불편하고 그 문제로 인해서 몸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아마도 성폭행을 당해서 딸을 낳은 것 같은데 그 사실도 끔찍한데 딸을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모드는 그 아이가 기형이 심해서 죽었다고 들었으므로 아마 그 슬픔을 계속 안고 살았을 것이다. 모드의 남편, 에버렛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에버렛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준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모드의 오빠 이모 모두 밥맛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모드의 이모가 모드에게 "너만 행복을 찾았다"고 말할 정도로 모드는 행복했다. 다들 행복하기 위해서 약삭빠르게 머리를 쓰고 결정을 내리고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을 피하려고 애를 쓴다. 모드의 딸을 입양 보낸 것도 모드의 오빠가 엄마가 물려준 집을 판 것도 에버렛이 모드에게 노동에 대한 대가를 주지 않으려고 하고 구박한 것도 다 자신이 행복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행복하려고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모두 불행해지고 불행의 조건을 골고루 가지고 있는 모드만 행복해진다. 모드를 행복하게 한 것은 창작열이었다. 영화에서 모드의 그림을 알아본 여인이 모드에게 물어본다. 그 창작열이 어디서 나오냐고. 나는 그 질문이 매우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예상은 맞았다. 모드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 그도 몰랐을 테니까. 모드가 잘한 것은 창작열을 발산했다는 것이다. 그의 꿈을 펼치기에는 정말 열악한 상황이었다. 가난해서 물감이나 캔버스를 살 돈도 없었고 시간도 별로 없었고 몸도 불편했다. 하지만 모드는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모든 곳에 그림을 그렸다. 실제로 모드의 그림을 보면 느낌은 매우 좋은데 자세히 보면 붓의 터치가 섬세하지 못하다. 몸이 불편하니 그랬을 것 같다. 그래도 모드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좋은 느낌이 막 밀려온다. 예술이 모드를 구원했다. 그래서 예술이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창작열이라는 것이 모드에게만 있을까? 아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에게 창작의 열정이 생길 것이다. 모드는 포기할 만한 상황이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그 열정을 발산했다. 그러니까 모드도 아주 잘한 것이다. 창작열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소명을 땔감 삼아 잘 태운다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모드가 살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