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말한다

[영화] 라스트 홈 (2015)_승자 독식 구조의 나라 미국

영화는설왕은 2023. 1. 27. 09:00

내가 미국에서 살면서 놀란 것 중 하나는 공권력의 무서움이다. 우리나라 경찰은 그리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일단 그들은 총을 가지고 있고 총을 잘 쏜다. 자신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총을 쏠 수 있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큰 위협이 된다. 경찰 앞에서 외국인은 아무래도 더 긴장하게 된다. 말이 잘 안 통할 수 있어서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 <라스트 홈>의 초반 장면에서 나는 미국에서 살았을 때 느꼈던 불안함을 느꼈다. 경찰이 들이닥쳐서 퇴거 명령을 집행한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억지로 퇴거 명령을 내릴 정도면 그 이전에 벌써 엄청난 긴장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라스트 홈>에 나온 것처럼 갑자기 집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낯선 장면이다. 하지만 미국이라면 가능하다. 미국은 그런 나라다. 미국에서 살았던 기억 때문에 그런지 <라스트 홈>을 보는 내내 불안했다. 

 

* 대충의 줄거리

<라스트 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났을 때 주택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쫓겨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확히는 쫓겨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쫓아내는 사람의 이야기다. 쫓겨 나가는 데니스 내쉬(앤드류 가필드)는 쫓아내는 부동산 브로커 릭 카버(마이클 섀넌) 밑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쉬가 겪는 내적 외적 갈등을 다룬 영화이다. 

 

*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영화

나는 이 영화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 저런 일이 일어난다고? 그게 말이 되나? 이런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라스트 홈>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예를 들어 내쉬가 하는 나쁜 일 중에 하나가 퇴거 명령이 집행된 집의 에어컨과 수영장의 모터를 훔치고 도난당했다고 신고를 한다. 그러면 그 기계들을 다시 설치할 수 있는 돈을 지급해 주는데 그 돈을 받고 훔쳤던 에어컨과 모터를 다시 설치해 놓는다. 눈먼 돈을 먹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신고 정신이 더 투철한 편인데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실제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났을 때 수많은 사람이 집을 잃고 노숙자가 되거나 내쉬처럼 모텔에서 살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 지금도 미국에는 노숙자가 참 많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집을 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냥 월세로 계속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월세가 장난이 아니라서 직장에서 잘리는 순간 노숙자 신세가 되는 것이 너무 쉬운 일이다. 미국은 공권력이 세기 때문에 정말 <라스트 홈>에서 나온 장면들이 상상에서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미국이라는 나라 또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영화이다. 어쩌면 금리가 올라가는 이 시점에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 제목은 무엇을 의미할까?

<라스트 홈>의 원제는 <99 homes>이다. 나는 영화의 제목을 생각하면서 내용을 예상했다. <라스트 홈>이 주는 느낌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안착하게 될 우리의 마지막 집에 대한 이야기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원제는 <라스트 홈>이 아니었다. <99 homes>는 다른 느낌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것은 내쉬의 이야기가 아니라 카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라스트 홈>이 아니라 <99 homes>이 맞다. 나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했을 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가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양과 소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던 부자가 가난한 이가 아끼고 사랑하던 양 한 마리를 빼앗아서 잔치를 벌인 이야기를 다윗에게 해 준다. 다윗은 당연히 노발대발한다.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냐고 하면서. 그러자 나단은 그 부자가 바로 당신이라고 말해 준다. 이 영화는 아흔아홉 채의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집을 한 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그 집을 빼앗는 이야기이다. 그런 짓을 저지르면서 다 합법적으로 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온갖 불법을 저지르면서 탐욕을 채우는 카버를 보면서 내쉬는 내적 갈등을 일으킨다. 하지만 카버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바를 말해 준다. 미국은 승자에, 승자에 의한, 승자를 위한 나라라고. 그래서 카버는 자신이 그 승자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은 확실히 그런 나라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나라다. 그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카버 밑에서 일하면서 고민하던 내쉬는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카버의 불법을 폭로한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쉬는 다시 집을 빼앗길 것 같다. 

 

 

* 100채를 채워야 하는 이유

카버는 내쉬에게 집에 대해서 감정을 가지지 말라고 충고한다. 집은 그냥 박스일 뿐이라고. 작은 박스와 큰 박스가 있을 뿐이라고 말해 준다. 미국 집은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집마다 모양이 다 다르니까.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파트 천지라서 그 말이 더 어울린다. 집은 그냥 박스일 뿐이다. 구조도 다 비슷하다. 정형화되어 있다. 모든 집의 모양이나 색깔이 다 비슷하기 때문에 차이는 크기와 가격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기 어려운 것 같다. 단지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삼을 뿐이다. 카버는 많은 집을 가지고 있지만 더 많은 집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왜 그러는 걸까? 나이 들면서 이해하는 부분이 생기기는 했다. 내가 탐욕을 부리지 않으면 결국 다른 탐욕자로 인해서 내 것을 빼앗기게 된다는 것. 내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나도 탐욕을 부려야 하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먹히지 않기 위해서 내가 열심히 먹어야 한다는 것. 총을 꺼내서 쏘지 않으면 내가 총에 맞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누구를 만나더라도 빨리 내 총을 꺼내서 상대방을 쏘아야 한다. 내가 만나는 100명 중 한 명이라도 나를 쏠 마음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한 명을 제거하기 위해서 나는 100명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 어떻게 해야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내쉬는 성공하지 못했던 것 같다.